노순택작가

스크랩 2007. 12. 13. 22:10

석연찮게 감동 주는 야릇한 그대여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 “고장난 섬” 매향리.
분단의 교활한 향기를 어둑한 색감으로 비웃으며
사진계를 넘어 미술계에서도 인정받는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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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차가 널브러져 있다(사진1). 왜? 그런가 하면 하얀 공들이 너른 벌판 이곳저곳에 박혀 있다. 뭐지?(사진2) 노순택(37)의 사진이다. 갸우뚱하면서 사진집을 덮는다. 1초, 2초, 3초, 4초 … 호기심을 참을 수 없다. 다시 펼친다. 이번에는 긴 시간을 두고 자세히 뚫어져라 본다. 그곳에서 찾아낸 것은 분단의 상처와 제도화된 권력의 폭력, 그것을 눈감는 우울한 자화상이다.


대추리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하얀 공

사진가 노순택의 사진은 낯설다. 도대체 무엇을 찍은 거지? 왜 대낮인데도 깜깜하지? 끝도 없는 의문이 생긴다. 그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그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브레이트의 연극처럼 내 사진도 사람들에게 조금 흡수되고 덜 감동적이고 낯설었으면 한다. 뭔가 석연찮은 느낌과 혼란, 고민할 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




» “얄읏한 공” 대추리(위). “비상국가” 대추리(아래 왼쪽). “애국의 길” 2004년 시청 우익시위 현장(아래 오른쪽).
그가 처음 관심을 가진 주제는 ‘분단’이었다. 대학시절 그는 학교 게시판에서 주한 미군에게 살해된 ‘윤금이’의 처참한 사진을 보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뒤 주한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죽은 ‘효순이, 미선이’를 만난다. 그는 명백한 범죄에 대해 한국 사회가 드러내는 태도가 못마땅하다고 분노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진 작업이 2004년 개인전 ‘분단의 향기’였다.

‘왜 향기지? 향기는 좋은 거 아닌가?’ 또 의문이 든다. “분단은 거대하고 조직적이고 내가 침범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분단의 처연한 현실을 보려고 카메라를 들고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분단의 악취가 아니라 교활한 향기였다. 비열한 쓰레기 냄새가 애국주의란 향기로 둔갑해서 떠돌고 있었다. 분단의 단순한 논리가 블랙코미디처럼 우스웠단다.

첫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세상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그만의 독특한 사진으로 표현되었고 특이한 흑백의 톤과 앵글은 리얼리즘에 예술적 감각이 얹혀진 듯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그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눈’이 있다. 우리가 은연중에 모방해 버린 미국식 다큐멘터리 사진의 흔적이 그에게는 없다.




» “얄읏한 공” 대추리(위). “존재하는 저항” 대추리.(아래)
2006년, 그는 신한갤러리에서 ‘얄읏한 공’이 전시되면서 미술계마저도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 사진전의 주인공은 평택 대추리에 박혀 있는 하얀 공이다. 2004년 노순택은 분단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가 평택 대추리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하얀 공을 만난다. 물탱크 같기도 하고 기름탱크 같기도 했다. 실체를 아는 이가 없었다. 주한 미군에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시원한 답은 없었다.

그는 찍은 사진 몇 장을 국내 한 포털 사이트에 올렸고 비로소 그 이름이 ‘레이돔’이란 것을 안다. ‘레이돔’은 정보 수집을 하는 레이더를 기후로부터 보호하려고 만든 공이란다. 주한 미군의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다.

불을 지피는 아낙네 어깨 너머에도 공은 있고, 경찰과 대치한 다급한 상황에도 공은 저 멀리서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공은 보름달처럼 변했다가 기괴한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한동안 공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서든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공은 느긋했고 그 아래 우리들은 초조했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의 이 시리즈 작품 열 점을 소장했다. 내년 2월에는 독일에서 전시회가 열린다. 그야말로 젊은 나이에 ‘떠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덥수룩하고 어둑하다. “처음 대추리 ‘야릇한 공’ 작업한 것을 갤러리에 내보일 때 심적으로 부담이 컸다. 대추리는 깨지고 있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이어서 그는 소망을 말한다. “전업 작가를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5년 전 세 살배기 아이를 가운데 두고 무작정 회사를 때려치울 때 아내에게 허락받은 시간이 올해까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하다




» 한국의 사진가들
그의 사진이 묘한 감동을 주는 것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부조리한 사회문제 한가운데에 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반발한다. 그것은 포장이고 위선이란다. 북한을 다룬 ‘붉은 틀’, 광주를 다룬 ‘망각기계’가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노순택의 특이한 점 한 가지 더. 그는 글도 잘 쓰는 사진가다. 때로 칼에 배인 것 같은 쓰라림이 글에서 느껴진다. “B기자는 ‘문제의 기사’를 들먹이며, 나를 힐난했다. 평양행 취재가 있는 줄 알면서도,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글을 썼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그의 두툼한 주둥이를 통해 뱉어진 ‘훈수’에 나는 구역질을 느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애타는 눈물이 행여 북조선 당국의 심기를 건드릴까 걱정하던 그분, 나는 이런 자들이 남북관계를 망쳐왔다고 생각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작품 사진 노순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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